2008년 07월 09일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 지라도
불안한 혁명이 아닌 이상 진보의 집권은 늦게 올 수 밖에 없다
진보는 왜 패하는가
먹고사니즘은 위대하다. 맹자도 항산(먹고사니즘)이 없으면 항심(제대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나라의 먹고사니즘의 위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할 때에 공통된 의견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는 못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하고 허리띠를 졸라메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서민경제는 파탄나 있지만 이와는 무관한 얘기인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멘다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편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전세계의 시민들에게 한다면 아마 상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젖을 뒤로 넘겨 크게 웃거나, 미친 졸부놈이 헛소리를 해댄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국이 "먹고 살기 무섭습니다. 허리띠를 더 졸라메어야 해요"라고 말을 한다면 정말 블랙코미디인 것이다. 외국에 대한 국가의 기부금이나 자선사업이 국가의 경제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사는 서유럽의 지식인들이 하는 말중에 "한국처럼 경제강국 또는 잘 사는 나라가..."라는 표현을 제법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볼 때에도 과연 한국사람은 무엇인가에 미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무엇이 한국의 일상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극심한 생존에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먹고사니즘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는가.
"진보는 왜 패하는가"의 필자는 보수라고 점잖게 언급하였지만. 수구세력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오늘의 조선일보의 헤드라인도 "촛불시위 때문에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세상이 각박하고 위험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지금 당장이라도 위기에 죽을 수 있다"라는 것을 조장한다. 흔히들 초식동물이 위기감을 느낄 때 뭉침으로서 위기를 극복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뭉칠 여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수구세력은 극심한 위기감의 조성으로 각 개인을 파편화시키며 불안과 공포에 더불어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을 심는다. 예를 들어 일반 근로자와 "파업하는 노동자"를 별개의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서 한 쪽을 소외시킨다. 수구세력이 지칭하는 "일반 근로자"도 잠재적인 파업권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의 개선을 이유로 아래 파업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신뢰의 상실은 최소한의 연대의 여력까지도 소진시키며 또다시 불안과 공포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래서 각 개인은 불안과 공포가 팽배하는 각박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스스로" 자력갱생을 하기 위해서 무한경쟁을 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미친듯이 탐독하게 되고, 옆의 동료는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 아니라 믿지 못할 경쟁의 상대일 뿐이다.이러한 위기감은 끊임없는 악의의 경쟁을 낳아 경쟁에 지쳐서 자살하게 하고(세계적인 자살율), 불안감과 팍팍한 현실은 출산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세계적인 저출산율). 특히 IMF이후 노골화된 국가의 보호기능 포기(물론 그 전부터 대한민국은 개개인의 국민들을 생존의 정글에서 보호하기는 커녕 내팽겨쳐 왔지만 )는 이 땅의 시민들의 생존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었고, 생존에 대한 본능을 더욱 자극하였다.
물론 이 프레임에서 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세뇌를 당한 덕에 알지 못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퍼뜨리는 집단들이 들어진 경제위기를 즐기며 호의호식하고 있는동안, 대다수의 국민들은 스스로를 무한경쟁의 늪에 빠뜨려서 서로 뜯어먹고 무한경쟁이라는 형틀 아래 서로 열심히 인간기름을 짜내어주며, 호의호식하는 소수의 수구세력에 자신들의 노동의 성과물, 즉 인간기름을 갖다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러한 과정 속에 허상의 위기감은 악순환을 낳아 실제로 위기가 되기도 하며 시민들의 삶은 점점 각박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상의 위기감은 결정적으로 시민들의 이성적 능력을 파탄시켜 잘못된 착취구조에 대한 비판여력과 연대를 상실시킨다. 대항할 수 없게 만든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는 대단히 전염되기 쉽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의 인간을 평온함이라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는 것보다 평온한 상태의 인간을 불안과 공포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더 쉽다. 특히나 이성적이고 지적인 풍토는 커녕 광기와 야만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얼마나 불안과 공포가 잘 퍼질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90년대 초반 경의 사이비종교 휴거 사태나, 이제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교육현실, 광신적인 종교문화, 집단심리현상 등 반지성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잘 퍼질 수 있었는가의 예를 찾기는 무척이나 쉽다.
수구정당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여 위기의식을 형성한 후에, 또는 실제의 위기상황을 만든 후에 즉 먹고사니즘에 심각한 위협을 조장하거나 허위의 위기감을 세뇌시킨 후, 자신들이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서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진보는 왜 패하는가"라는 글의 필자는 수구세력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공포에 대항하여 진보세력은 싸워야 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함이 없이 진보세력의 의제설정능력의 부족이 패배의 주요한 원인인양 말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 불편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구세력이 조장한 먹고사니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일종의 허위의식인데, 과연 진보정당이 무엇을 극복할 것을 제시하여야 한단 것인가. 이녁님은 진보정당의 "의제선점 능력"의 부족으로 "홍보가 안된다"라고 하고 있는데, "공포와 불안이 날조되고 과장된 것"을 공격하고 비판할 수는 있더라도, 즉 허위의식의 극복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수구정당처럼 진보정당이 홍보를 잘하여서 "환상"을 심어주라는 것은 진보정당보고 수구정당의 파렴치한 국민사기극에 동참하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스포츠게임에서 반칙을 쓰는 상대방에게 룰을 지키며 정공을 펴는 것은 답답하고 실제로 게임에서 이길 확률도 매우 낮지만,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진보세력이 존재근거를 부정하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정치는 시민의식의 반영이다. 아무리 지금 이명박을 미워하더라도, 우리 나라 국민의 과반수에 이르는 자의 수준이 이명박의 수준이거나 이명박에 속아 넘어갈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나쁜 놈이고 속고 있다고 말을 하여도, 시민의식의 향상 없이는 다시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홍보와 공격대상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진보정당이 설사 어떠한 편법 또는 홍보의 극대화를 통하여 집권하여봤자 사상의 누각이요 신기루에 불과하다. 비이성적이고 광신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수구세력이 조장하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의식의 지배적인 형성이 필요한데, 이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교육과 언론의 부분에서의 많은 역량의 집중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로 진보세력에 한 발이라도 담구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급하게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조금씩조금씩 사회의 개선을 바라고 있으며, 실제로 진보세력의 정치인들 중에는 진보정당의 집권은 30년 뒤쯤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일도 더러 있다. 식민지 현실과 전쟁을 경험하였으며, 군사독재시기에서의 굴종과 IMF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며 한국인의 내면에는 불안과 공포가 너무나도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지적역량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라는 콤플렉스 아래서 안타깝게도 유아기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감은 이성적인 판단을 억누르고 있으며 그래서 때로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광신적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사실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러한 풍토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낙관 아래서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과 운동가들은 진보운동에 투신한다. 실제로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상승속도가 느리지만 길게 보아 증가하고 있다. 그것이 꼭 당장의 집권이 아니더라도, 세속적인 이름의 승리가 아니더라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진보는 느리지만 길거리의 잡초처럼 생명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제가는 번성하리라는 이성적 낙관 아래, 많은 이들이 진보라는 뚜벅이 걸음을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왜 패하는가
먹고사니즘은 위대하다. 맹자도 항산(먹고사니즘)이 없으면 항심(제대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나라의 먹고사니즘의 위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할 때에 공통된 의견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는 못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하고 허리띠를 졸라메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서민경제는 파탄나 있지만 이와는 무관한 얘기인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멘다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편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전세계의 시민들에게 한다면 아마 상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젖을 뒤로 넘겨 크게 웃거나, 미친 졸부놈이 헛소리를 해댄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국이 "먹고 살기 무섭습니다. 허리띠를 더 졸라메어야 해요"라고 말을 한다면 정말 블랙코미디인 것이다. 외국에 대한 국가의 기부금이나 자선사업이 국가의 경제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사는 서유럽의 지식인들이 하는 말중에 "한국처럼 경제강국 또는 잘 사는 나라가..."라는 표현을 제법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볼 때에도 과연 한국사람은 무엇인가에 미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무엇이 한국의 일상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극심한 생존에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먹고사니즘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는가.
"진보는 왜 패하는가"의 필자는 보수라고 점잖게 언급하였지만. 수구세력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오늘의 조선일보의 헤드라인도 "촛불시위 때문에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세상이 각박하고 위험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지금 당장이라도 위기에 죽을 수 있다"라는 것을 조장한다. 흔히들 초식동물이 위기감을 느낄 때 뭉침으로서 위기를 극복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뭉칠 여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수구세력은 극심한 위기감의 조성으로 각 개인을 파편화시키며 불안과 공포에 더불어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을 심는다. 예를 들어 일반 근로자와 "파업하는 노동자"를 별개의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서 한 쪽을 소외시킨다. 수구세력이 지칭하는 "일반 근로자"도 잠재적인 파업권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의 개선을 이유로 아래 파업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신뢰의 상실은 최소한의 연대의 여력까지도 소진시키며 또다시 불안과 공포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래서 각 개인은 불안과 공포가 팽배하는 각박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스스로" 자력갱생을 하기 위해서 무한경쟁을 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미친듯이 탐독하게 되고, 옆의 동료는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 아니라 믿지 못할 경쟁의 상대일 뿐이다.이러한 위기감은 끊임없는 악의의 경쟁을 낳아 경쟁에 지쳐서 자살하게 하고(세계적인 자살율), 불안감과 팍팍한 현실은 출산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세계적인 저출산율). 특히 IMF이후 노골화된 국가의 보호기능 포기(물론 그 전부터 대한민국은 개개인의 국민들을 생존의 정글에서 보호하기는 커녕 내팽겨쳐 왔지만 )는 이 땅의 시민들의 생존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었고, 생존에 대한 본능을 더욱 자극하였다.
물론 이 프레임에서 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세뇌를 당한 덕에 알지 못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퍼뜨리는 집단들이 들어진 경제위기를 즐기며 호의호식하고 있는동안, 대다수의 국민들은 스스로를 무한경쟁의 늪에 빠뜨려서 서로 뜯어먹고 무한경쟁이라는 형틀 아래 서로 열심히 인간기름을 짜내어주며, 호의호식하는 소수의 수구세력에 자신들의 노동의 성과물, 즉 인간기름을 갖다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러한 과정 속에 허상의 위기감은 악순환을 낳아 실제로 위기가 되기도 하며 시민들의 삶은 점점 각박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상의 위기감은 결정적으로 시민들의 이성적 능력을 파탄시켜 잘못된 착취구조에 대한 비판여력과 연대를 상실시킨다. 대항할 수 없게 만든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는 대단히 전염되기 쉽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의 인간을 평온함이라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는 것보다 평온한 상태의 인간을 불안과 공포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더 쉽다. 특히나 이성적이고 지적인 풍토는 커녕 광기와 야만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얼마나 불안과 공포가 잘 퍼질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90년대 초반 경의 사이비종교 휴거 사태나, 이제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교육현실, 광신적인 종교문화, 집단심리현상 등 반지성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잘 퍼질 수 있었는가의 예를 찾기는 무척이나 쉽다.
수구정당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여 위기의식을 형성한 후에, 또는 실제의 위기상황을 만든 후에 즉 먹고사니즘에 심각한 위협을 조장하거나 허위의 위기감을 세뇌시킨 후, 자신들이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서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진보는 왜 패하는가"라는 글의 필자는 수구세력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공포에 대항하여 진보세력은 싸워야 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함이 없이 진보세력의 의제설정능력의 부족이 패배의 주요한 원인인양 말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 불편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구세력이 조장한 먹고사니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일종의 허위의식인데, 과연 진보정당이 무엇을 극복할 것을 제시하여야 한단 것인가. 이녁님은 진보정당의 "의제선점 능력"의 부족으로 "홍보가 안된다"라고 하고 있는데, "공포와 불안이 날조되고 과장된 것"을 공격하고 비판할 수는 있더라도, 즉 허위의식의 극복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수구정당처럼 진보정당이 홍보를 잘하여서 "환상"을 심어주라는 것은 진보정당보고 수구정당의 파렴치한 국민사기극에 동참하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스포츠게임에서 반칙을 쓰는 상대방에게 룰을 지키며 정공을 펴는 것은 답답하고 실제로 게임에서 이길 확률도 매우 낮지만,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진보세력이 존재근거를 부정하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정치는 시민의식의 반영이다. 아무리 지금 이명박을 미워하더라도, 우리 나라 국민의 과반수에 이르는 자의 수준이 이명박의 수준이거나 이명박에 속아 넘어갈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나쁜 놈이고 속고 있다고 말을 하여도, 시민의식의 향상 없이는 다시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홍보와 공격대상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진보정당이 설사 어떠한 편법 또는 홍보의 극대화를 통하여 집권하여봤자 사상의 누각이요 신기루에 불과하다. 비이성적이고 광신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수구세력이 조장하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의식의 지배적인 형성이 필요한데, 이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교육과 언론의 부분에서의 많은 역량의 집중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로 진보세력에 한 발이라도 담구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급하게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조금씩조금씩 사회의 개선을 바라고 있으며, 실제로 진보세력의 정치인들 중에는 진보정당의 집권은 30년 뒤쯤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일도 더러 있다. 식민지 현실과 전쟁을 경험하였으며, 군사독재시기에서의 굴종과 IMF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며 한국인의 내면에는 불안과 공포가 너무나도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지적역량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라는 콤플렉스 아래서 안타깝게도 유아기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감은 이성적인 판단을 억누르고 있으며 그래서 때로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광신적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사실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러한 풍토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낙관 아래서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과 운동가들은 진보운동에 투신한다. 실제로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상승속도가 느리지만 길게 보아 증가하고 있다. 그것이 꼭 당장의 집권이 아니더라도, 세속적인 이름의 승리가 아니더라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진보는 느리지만 길거리의 잡초처럼 생명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제가는 번성하리라는 이성적 낙관 아래, 많은 이들이 진보라는 뚜벅이 걸음을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것이다.
# by | 2008/07/09 22:32 | 트랙백(2) | 덧글(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사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 지라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칭 보수' 들이 내세우는 최고 명분이, "조금만 더 참고 우리한테 힘을 밀어줘. 그러면 다들 잘 살게 만들어 줄께" 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영영 '모두가 살만한 세상' 이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는 없는 것이죠.친일친미매국의 유산을 건네받은 그들이, 서민들이 역사를 돌아볼 여유가 없게 만들고......more
제목 : 두려움과 공포.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 지라도 영화 식코에서도 감독이 대놓고 말하고 있고, 내가 이전에 내 블로그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대중을 다스리는 제일 효과적인 무기 중의 하나가 공포다.이 무기의 특징은.... 공포로 인하여 나온 대중의 행동은 깊은 사려가 없는, 단순하고 우매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이것은 대중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집권층에게는 정말 큰 장점이다.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깊은 생각을 하기보다, 위......more
마음이 편안해지는 결론입니다-.
저도, 최근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상황에 절망하는 지인에게 하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이길 줄 알았습니까?" "그렇게 금방 포기할만한 싸움입니까?"
어쨌든 그들이 기득권이거든요.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온 인터넷을 뒤덮은 광우병 괴담만 보더라도. ㄲㄲㄲ
무엇보다 그 괴담의 진원지는 2007년의 위대하고도 지고하신 '수구'이십니다? 한나라당 만세? 왱알앵알?
심심해서 근성체 한번 써보고 갑니다. 주인장 분의 좋은 글은 잘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온 인터넷을 뒤덮었다는 것도 괴담이네요. 특정 몇몇 포탈에서 소문이 돌은 게 온 인터넷이 뒤덮인 건가요.
마르가리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ane0083/ 진보는 도전자입니다. 난공불락의 성을 계속 공격하는중이죠. 근데 시간만 지나면 무너질 것 같습니다. ^^
카루/ 감사합니다.
테스트7/ 촛불 집회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광우병의 공포 분명히 이성적인 평정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체감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미국쇠고기는 불결하게 생산되며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한 공포라는 것이 수구세력이 조장하는 허상의 공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겨레 경향 등의 개혁 진보적인 언론들의 비이성적인 공포에서 더 한층 깊은 검역주권이나, 소비자의 선택권등의 논의로 확장시켜나갔고, 주목할 점은 다음의 아고라나, 광장에서의 집단토론 등을 통해 대중 스스로가 논의를 이성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같다고 하기엔 너무도 큰 차이를 간과하고 촛불집회를 동일선상에 올려놓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토순이/ 감사합니다.
highseek/ 정보의 부족이 공포를 더 키웠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광우병은 아직 미지의 질병이라 공포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